"야생동식물 '보호' 아닌 죽이고 관리하는 정부 예산 비판한다"
"야생동식물 '보호' 아닌 죽이고 관리하는 정부 예산 비판한다"
  • 이병욱 기자
  • 승인 2019.12.12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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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년 야생동식물 보호 및 관리 예산 284억원 규모 편성
70%가 야생멧돼지 관리 용도… 사육곰 생츄어리 비용은 제외
철창 안에서 울부짖는 사육곰의 모습.(사진 녹색연합 제공)
철창 안에서 울부짖는 사육곰의 모습.(사진 녹색연합 제공)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야생동식물 보호 및 관리 예산 역시 큰 규모로 증가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다.

2020년 정부 예산은 올해 예산 469조6000억원보다 9.1% 증가한 512조2504억원 규모다.

역대 가장 큰 규모로 확대된 예산안에는 야생동식물 보호 및 관리 예산 역시 올해보다 154억원 증가한 28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하지만 규모와 달리 예산 집행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 야생동물의 보호에 대한 정부의 노력과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배정된 예산 284억원 가운데 203억원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 방지를 위한 야생멧돼지 관리 용도로 배정됐다.

멧돼지 차단울타리 등 피해예방시설 설치에 138억원, 멧돼지 폐사체 신고 포상금 50억원, 폐사체 검사비용 15억원 등 예산의 70%가 야생멧돼지를 죽이고 관리하기 위한 비용인 셈이다. 

반면, '야생동식물의 보호'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이었던 '사육곰 생츄어리(보호시설)' 건립 관련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예산안에서 빠지고 말았다.

국내에서 사육곰이 길러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1년 정부가 재수출 목적으로 사육을 권장해서다.

1981년에서 1985년 사이 493마리의 곰이 수입된 뒤 증식을 통해 2005년 1454 마리까지 증가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17년 3월까지 진행된 증식금지 사업 이후 개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현재 450여마리가 남아있다.

전국에 아직 남은 31개 사육곰 농장의 농장주들은 곰의 증식도, 수출의 길도 막히자 곰들을 그대로 방치하다시피해 사육곰 보호시설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하지만 기재부는 사육곰 증식금지 사업 당시 농장주들에게 사료비 명목으로 지급된 지원금을 이유로 '사육곰 생츄어리' 관련 예산 증액에 반대했고, 결국 내년도 예산안에서 빠졌다.

이처럼 사육곰 사업을 장려한 원죄가 있는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한 예산 배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을 두고 동물보호단체가 강하게 비판했다.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는 12일 성명을 통해 "사육곰 생츄어리 건립 관련 예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반대는 사실상 동물을 죽이는 예산으로 변질시켰다"며 "이쯤 되면 야생동식물 보호 및 관리사업이 아닌 ‘야생동식물 박멸예산’이라 불러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야생동물의 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사회적 요구에 반하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8월 전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민인식조사 결과, 사육곰 문제에 대한 정부 역할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하다'는 대답이 79.3%(전적으로 필요함 50.3%, 어느 정도 필요함 29.0%)를 차지했다. 사육곰 특별법 제정에도 78.3%의 응답자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한 동물자유연대가 사육곰 생츄어리 예산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진행한 서명운동에는 단 이틀만에 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동참하기도 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사육곰 생츄어리 관련 예산의 제외는 현 정부의 일천한 생명감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건강한 생명국가를 공약한 바 있는데 그 약속과 정반대의 행보는 정부의 진실성과 공약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또한 조 대표는 정부에 대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건강한 생명국가’의 방향성 대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환경부 한 부처만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사육곰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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