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왜 그들의 식탁에서 '고기'가 빠지게 되었나
채식주의자, 왜 그들의 식탁에서 '고기'가 빠지게 되었나
  • 조소영 활동가
  • 승인 2018.06.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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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환경윤리·건강 '삼박자' 가능…"까다로워도 행복해"

필자는 서울 잠실에서만 20년 넘게 살아온 잠실 토박이로 이곳의 랜드마크인 놀이공원, 백화점, 거대한 타워와 한강공원을 마음껏 즐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채식에 눈뜨게 된 이후 좀처럼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식당을 찾기 힘들었는데 최근 들어 집 주변에 채식식당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식탁에서 고기를 빼게 되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뛴 이야기를 전한다.

◇어쩌다 채식이 아닌 일상화된 채식을 꿈꾼다

씨젬므쥬르의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토마토 숏파스타, 곡물샐러드 보울. 모두 식물성 재료만으로 만들었다.
씨젬므쥬르의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토마토 숏 파스타, 곡물샐러드 보울. 모두 식물성 재료만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접시에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가 올려져 있다. 일반 파스타에 비해 수분량이 많고 기름이 적어 채소 본연의 맛을 살려준다. 렌틸콩과 노미트볼(NO-MEAT ball), 두부 마요네즈가 어우러진 골든 프렌치 보울과 비건 치즈가 올라간 토마토 숏 파스타 이 모든 게 식물성 재료만으로 만들어졌다. 르꼬르동블루 호주에서 공부한 젊은 쉐프가 운영하는 씨젬므쥬르는 지난 4월 문을 연 뒤 인근 직장인들의 입 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중이다. 이곳의 대표인 이상혁 쉐프는 채식식당을 연 계기가 건강과 동물윤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는 채식식당이라고 홍보하지 않아요. 실제로 이 곳에 오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곳을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이라고 알고 오더라구요.”

풀만 먹을 것 같은 채식에 대한 선입견 없이 누구나 쉽게 일상 속에서 채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이 대표만의 방법이다. 땅에서 자라고 나무에서 열매를 맺는 재료가 갖는 특성을 살려 소화가 쉽고 위에 부담 없는 한 끼를 만든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고객들 대다수가 하나같이 ‘속이 편해지는 음식’이라 칭찬한다고.

그는 어쩌다 한 번 특별한 날 채식을 하는 것이 아닌 삼겹살, 피자, 우동 등 외식 메뉴로 흔히 고려하는 것들 중 하나에 채식이 당당히 포함되는 날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격이 비싸지 않은 채식식당들이 보편화되면서도 비채식인들이 채식을 많이 접해봐야 한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그에게서 깊은 철학과 남다른 소신이 느껴진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일상에서의 채식문화를 꿈꾸는 그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다

식물성 베이커리의 대중화를 꿈꾸는 더브레드블루. 우유, 버터, 계란을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식물성 베이커리의 대중화를 꿈꾸는 더브레드블루. 우유, 버터, 계란을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365일 24시간 내내 단 것을 손에 놓지 못하는 이들에게 빵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반죽에 우유와 달걀을 넣어 빵을 만드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필자는 채식을 시작하면서 빵 금단현상에 시달려왔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어미 소와 암탉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먹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 이제 식물성 베이커리 더브레드블루 덕에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다.

더브레드블루 잠실점 우혜영 점장은 왜 식물성 베이커리는 동네빵집에서 그쳐야 하는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식물성 베이커리가 많아진다면 동물보호, 지구환경 개선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우 점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더브레드블루의 목표는 식물성 베이커리의 대중화로 신촌 본점 외에도 서초, 공덕 등에 지점을 내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우유나 버터가 들어가야만 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빵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더브레드블루만의 시그니처 메뉴인 흥국이슈, 카카크림빵, 코코넛크림빵 모두 우유, 버터, 계란 등 동물성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든 크림빵으로 오히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재료 선정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체재를 이용해 충분히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유당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식물성 베이커리는 좋은 대안이 된다.

우 점장이 덧붙인다. “한 아버지와 어린 딸이 빵을 사러 왔을 때의 일이에요. 아버지가 딸 아이에게 '여기 있는 빵은 아무거나 골라도 돼, 모두가 행복해지는 빵이야'라고 하면서 즐겁게 빵을 고를 때 내가 만드는 빵이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동물보호, 환경윤리, 건강 삼박자를 가능케 하는 채식

필자가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암컷 동물들이 겪는 현실과 마주한 뒤다. 임신과 출산의 능력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이 되는 세상에서 나와 같은 ‘여성’ 동물들이 새끼 낳는 기계처럼 취급되며 착취 당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칼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3월, 경기 고양시 개농장에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백여 마리의 개들이 끊임없이 짖어대던 농장 한쪽에 비닐로 만든 천막이 있었다. 보나마나 불법건축물일 터, 내부 확인을 위해 들어가보니 돼지 여러 마리가 스톨에 갇혀 있었다. 사람이 와도, 개 짖는 소리로 밖이 소란스러워도 돌아보지 못했다. 분변으로 더러워진 몸을 닦아낼 수도 없이 그렇게 돼지들은 무기력하게 갇혀 있었다. 그것도 개농장 한 켠에서 말이다. 말로만 듣던 스톨은 실로 끔찍하고 잔인했다. 폭 0.6m, 길이 2m의 스톨에 갇혀 사는 어미 돼지들은 생후 210일이 되면 인공수정이 시작된다. 임신한 어미 돼지는 115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을 하지만 임신 후에도, 출산 후에도 스톨을 벗어날 수 없다.

스톨에 갇힌 어미들은 새끼들에게 단 20일만 젖을 물린다. 이후 새끼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렇게 어미 돼지는 스톨에 갇혀 1년에 최소 2회 강제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번식능력이 퇴화되는 3~4년 차에 도축된다.

물론 이런 현실을 알게 됐더라도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음식을 단번에 끊기는 어렵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먹게 되는 과자, 우유 역시 채식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채식이 가지는 이점 때문이다.

우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동물을 구하는 것이다. 최소 비용으로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농가에서는 고밀도 사육방식과 동물학대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푸른 초원에서 양과 소가 마음껏 풀을 먹으며 뛰어 노는 것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동물의 기본적 욕구와 습성은 모조리 무시된 채 공장에서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듯 고기와 달걀, 유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빼버린다면 고통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환경도 살릴 수 있다. 고기가 되기 위한 잔인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이 내뿜는 온실가스와 가축분뇨는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쇠고기 생산과정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 비중은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보다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나의 삶도 건강해진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임시방편으로 주입되는 항생제는 결국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게 되고 잔류호르몬이나 잔류항생제가 우리의 몸에 축척 된다. 미국의 자연식품 전문사이트 원 그린 플래닛에 따르면 육류보다 건강하게 단백질 공급을 돕는 대표적인 식물성 식품에는 병아리콩, 호박씨, 버섯, 루콜라, 렌틸콩이 있다. 이 외에도 두부나 브로콜리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자재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채식을 시작하니 삶이 까다로워졌다. 김밥을 먹을 때 햄, 달걀을 빼고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를 고를 때에도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며 닭고기 시즈닝이 안 들어간 제품을 찾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동물들 생각에 삶이 괴롭고 가족들은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냐고 구박하지만 채식을 해서 행복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고 주변에 더 많은 채식식당이 생겨 많은 이들이 까다로워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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