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8평 징벌방 나와 드넓은 초원으로 간 '사자 가족'
[영상] 8평 징벌방 나와 드넓은 초원으로 간 '사자 가족'
  • 이병욱 기자
  • 승인 2018.07.06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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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사자 3마리, 미국 덴버 야생동물 생추어리로 이주
동물자유연대, 이주지 선정부터 사전답사·안전한 이송까지 도와

 

콘크리트 어둠 속의 수사자 '다크'
콘크리트 어둠 속의 수사자 '다크'

3년 가까이 사방이 콘크리트로 된 8평의 작은 격리방에 갇혀 지내다 드넓은 초원으로 가 자유를 찾은 '사자 가족'이 있다.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지내던 수사자 '다크'(2006년생)와 암사자 '해리'(2010년생), 그리고 둘의 새끼인 암사자 '해롱이'(2016년생)다.

이들 사자 가족이 방사장이 아닌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내실에 갇혀 지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무기력한 '해리'와 호기심 많은 '해롱이'.
무기력한 '해리'와 호기심 많은 '해롱이'.

지난 2015년 2월 12일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한 사육사가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이후 청소를 하기 위해 홀로 방사장을 찾았다가 사자 두 마리에 물려 숨졌다.

이 사건은 야생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고 전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우리사회에 던졌다.

사건의 범인이 바로 다크와 해리였다. 사건 후 둘은 격리방에 갇혀 징벌의 세월 보냈다. 그러던 중 2016년 해롱이가 태어났다. 새끼사자는 태어난 뒤 바깥 세상에 나오지 못한채 실내에 갇혀 살게 됐고, 비타민A 결핍증으로 2년째 약물 치료를 받아야만 했는데 설상가상 보행 장애와 뇌가 위로 솟아 있는 장애까지 안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이 사자 가족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천장의 뚫린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좁은 공간을 의미 없이 오갈 수 있는 자유 뿐이었다.

이 사자 가족이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의 도움으로 지난달 27일 밤 화물항공기편에 실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야생동물 생추어리(The Wild Animal Sanctuary·TWAS)로 옮겨졌다.

450여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 중인 생추어리 모습.
450여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 중인 생추어리 모습.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사자들은 항공기 운송을 위한 마취부터 항공기 탑승까지 13시간, 인천에서 로스엔젤레스 공항까지 11시간 비행, 현지 공항에서 검역과 반입 승인을 받고 덴버 생추어리까지 육로로 17시간 이동까지 총 41시간의 '이송작전' 끝에 6월 29일(한국시간) 무사히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앞서 동물자유연대는 비극적인 사고를 고려하더라도 사자들을 비좁은 내실에만 가둬둘 수 없다고 판단, 올해 초부터 사자들을 제3의 장소로 이주시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수개월 동안 해외 여러 야생동물 생추어리를 접촉해 사자들의 보호 및 관리 가능성을 타진한 끝에 여러 여건상 가장 적합한 덴버의 TWAS를 선택했다.

TWAS의 설립자이자 총책임자인 펫 크레이그(Pat Craig)로부터 사자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확답을 받은 후 동물자유연대는 3월말부터 어린이대공원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 결국 사자들의 이주가 성사됐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자들의 안전한 이주를 위해서 지난 4월 TWAS를 방문해 현지 환경을 검토하는 등 완벽한 사전준비를 했다.

사자 가족이 옮겨간 TWAS는 1980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비영리 야생동물보호 생추어리다. TWAS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남미, 스페인 등에서 동물원, 서커스에 이용된 동물들과 전시시설에서 과잉 번식으로 인해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 영구적인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

TWAS에서 초원을 바라보는 '다크'.
TWAS에서 현지 적응중인 '다크'.
해롱이
콘크리트 박스에서 쉬고 있는 해롱이.

전체 면적 789에이커(319만㎡·96만6000평)에 조성된 초원에서 450여마리의 사자, 호랑이, 늑대, 표범, 곰 등을 보호 중이다. 직원 55명과 자원봉사자 160명, 수의사들이 동물들을 돌보며, 후원자들의 기부에 의해 운영된다. 

현재는 시설을 더 확장하기 위해서 언덕, 절벽, 계곡 및 초원으로 구성된 9004에이커(3643만㎡·1100만평) 땅에 새로운 생추어리를 짓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는 긴 여정 끝에 새 보금자리를 찾은 '다크' '해리' '해롱이'는 드넓은 자연 속에서 햇볕과 바람을 쐬며 현지 적응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

약 3주 동안의 적응기간을 거친 뒤 사자 가족은 그들만의 공간이 될 넓은 자연 속에 방사될 예정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이주한 사자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적응하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TWAS와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맺어나갈 것"이라면서 "전국에는 아직도 수 많은 동물들이 햇볕조차 들어오지 않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둘러싸인 비좁은 방에서 정상적인 행동을 할 자유가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동물복지 향상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전시의 제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와 TWAS 관계자들이 사자들의 이송준비를 마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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