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 방치된 '사육곰'
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 방치된 '사육곰'
  • 이병욱 기자
  • 승인 2018.09.10 15: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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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540여마리 사육 중… 문제 해결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비뚤어진 한국 보신문화, 다른 나라 곰들에게까지 고통 강요
사육곰.(사진 동물자유연대 영상 캡처)
사육곰들은 비위생적인 사육환경과 지속된 상처 때문에 평생 복막염과 악성종양 등 고통에 시달린다.(사진 동물자유연대 영상 캡처)

 

#지난 2012년 1월 중국 북서부의 한 농가. 산채로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고통에 새끼 곰은 절규하며 몸부림쳤고, 이를 본 어미 곰은 죽을 힘을 다해 갇혀 있던 케이지(우리)를 부쉈다. 하지만 어미 곰은 고통에 신음하는 새끼 곰의 쇠사슬을 풀 수는 없었다. 결국 어미 곰은 자신의 사랑하는 새끼를 꼭 껴안아 질식시켜 죽였고, 자신도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자살했다. 인간을 위한 쓸개즙이 만든 곰 모녀(母女)의 비참한 최후다.

국내에도 이런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는 사육곰들이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1450여마리까지 늘었던 사육곰 개체수는 관련 규제 강화와 시장의 몰락 등으로 점차 줄었지만 아직 540마리가 존재한다.

특히 이 사육 곰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540마리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오는 16일 마감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2만 3000여명(10일 오후 기준)의 네티즌들이 청원에 동참하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청원자는 "현재 전국 540여 마리 곰들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가운데 고통 받고 있다"면서 "관련 규제 강화와 시장의 몰락으로 더는 곰을 키울 수 없다는 사육업자와 뒷짐만 진 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정부 및 관계 부처 사이 줄다리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사육곰의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개인이 야생곰을 재수출 용도로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적극 권장하면서 부터다. 

이 때부터 해외에서 곰을 들여와 웅담만 뽑아 재수출하는 가공무역을 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민간에서 곰 사육이 시작됐지만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인 곰에 대해 보호여론이 커지며 정부는 1985년 곰 수입을 금지했다.

곰 수입은 중단됐지만 이미 들여온 사육 곰들이 증식해 2005년에는 1454마리까지 불어났다. 

1993년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식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며 국제적인 야생동물 보호 정책에 합류, 곰의 국제간 상업적 거래가 차단됐다. 

국제적 동물보호 흐름과 규제로 수출이 힘들어지자, 정부는 곰 사육업을 위해 1999년부터 25년 이상 된 곰 도축을 허용했다. 2005년부터는 번식된 곰에 대해 최소 10년 이상으로 도축 기준을 완화했다.

여기에 2014년부터 정부는 사육 곰 증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수술 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 3월까지 사육 곰 967마리를 중성화했다. 사육농가에서 선택한 92마리는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 전시관람용 곰으로 남았다. 

이러한 조치와 시장에서 웅담 등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사육업자들이 곰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정부와 관계부처의 방관이 이어지면서 현재는 전국에 540여 마리 사육 곰들이 좁고 더러운 철창에 갇혀 갈증과 배고픔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비위생적인 사육환경과 지속된 상처 때문에 곰들은 평생 복막염과 악성종양 등 고통에 시달린다. 또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도 받는다. 

이로 인해 쉼 없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는 정형행동을 보이거나, 자신의 손과 발을 뜯어먹는 자해행동, 쇠창살을 씹어 이빨이 없어지거나 얼굴을 문질러 털이 다 빠지는 이상행동도 한다. 

이처럼 잔인한 사육방법을 수년간 경험한 곰들은 쓸개즙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배를 우리 쇠창살에 갖다 댄다. 쓸개즙 채취 때문에 사육되는 곰들을 '배터리 베어'라고도 부른다. 건전지에서 전기 뽑듯 쓸개즙을 빼내기 때문이다. 

곰 담낭에서 쓸개즙을 직접 채취하는 기술은 1980년대 초반 북한에서 처음 개발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쓸개(웅담)를 채취하려면 곰을 도축해야 하지만 쓸개즙은 곰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뽑아낼 수 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중국, 한국 등에서 웅담이나 쓸개즙 채취를 위해 사육되는 곰은 2만여 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쓸개즙을 채취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곰을 사육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현행법상 10년 이상 된 곰은 도축이 가능하다. 2015년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육곰이 10세가 되는 2024년이 되면 이 땅에서 사육 곰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은 전시관람용 곰의 개체 관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2016~2017년 전시관람용 곰들 사이에서 새끼 14마리가 태어났다. 전시관람용 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육 곰의 종식은 불가능하다.

곰의 쓸개즙은 '우르소데옥시콜린(UDCA)'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 물질은 간장보호기능이 있어 예전부터 동양의학에서 약재로 쓰였다. 그러나 이 물질은 이제 화학적으로도 합성이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추출된 곰 쓸개즙을 복용했을 때 세균과 기생충 감염 위험이 있고, 곰에게 항생제가 과다하게 투여되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에도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아직도 중국, 베트남, 라오스의 곰 농장에서 쓸개즙을 구입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이다. 

중국에서 사육 곰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동물보호단체 '애니멀스 아시아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중국 옌볜(연변)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중 30%가 곰 농장을 방문한다. 

또 2014년에는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곰 농장을 운영하며 한국인 관광객 앞에서 쓸개즙을 직접 뽑아 판매한 한국인 농장주가 현지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비뚤어진 한국의 보신문화가 다른 나라에 사는 곰들에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하고 있다.


☞540마리 사육곰 관련 국민청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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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2023-07-17 09:17:26
먹는 사람을 똑같이 죽여